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가 프랑스에서 체포됐다고 24일(현지시간) AFP와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텔레그램이 극단주의자의 테러를 비롯해 각종 범죄에 악용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를 하지 않은 혐의다.
프랑스 현지 언론들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두로프가 이날 저녁 파리 외곽의 르부르제 공항에서 붙잡혔다고 전했다. 두로프는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전용기를 타고 파리로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프랑스 경찰 내 ‘미성년자 대상 범죄 단속 사무국’(OFMIN)에서 사기, 마약밀매, 사이버폭력, 조직범죄, 테러조장 등 범죄에 대한 초기 수사 결과 두로프를 해당 범죄의 ‘조정 대리자’(coordinating agency)로 간주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고 AFP에 말했다.
수사관 중 한명은 두로프가 자신이 수배자임을 알고도 파리에 온 사실이 놀랍다면서 "텔레그램이 아무 처벌을 받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끝났다"고 말했다.
러시아 출신으로 39세인 두로프는 형 니콜라이 두로프(44)와 함께 러시아판 페이스북으로 불리는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프콘탁테(VK)와 암호화 메신저 앱 텔레그램을 만든 IT 사업가다.
2006년 개발한 VK를 러시아와 동유럽권에서 최대 SNS로 키워내 러시아에서 손꼽히는 부호 반열에 올랐고, ‘러시아의 마크 저커버그’로 불렸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가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VK 사용자 정보를 달라고 요구하자 이를 거절하고 VK 지분을 매각한 뒤 2014년 러시아를 떠났다.
두로프는 이후 독일에 머물며 2013년 출시한 텔레그램 운영에 집중했다.
현재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본사를 두고 있는 텔레그램은 암호화 프로그램을 이용해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메신저로, 높은 보안성으로 사용자들의 호응 속에 세계적 SNS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두로프는 지난 3월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2021년 5억명이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가 9억명으로 늘었다고 밝힌 바 있다.
텔레그램은 강력한 보안으로 비밀대화가 용이해 러시아, 이란, 중동, 홍콩 등에서 정부 탄압에 맞선 민주화 운동 세력의 소통 도구로 활용됐으나 최근에는 극단주의 콘텐츠나 가짜뉴스 확산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실제로 2021년 1월 미국 의회 의사당 난입 사태를 일으킨 극우 세력이 텔레그램을 통해 모였고, 최근 영국을 뒤흔든 극우 폭력 시위 참가자들도 텔레그램으로 폭동을 조직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과 관련해서도 두 나라 모두 텔레그램을 통해 걸러지지 않거나 자극적인 내용을 쏟아내고 있다.
한편, 두로프의 정자가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클리닉에서 3만 5000루블(약 51만 원)에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에 따르면, 두로프는 지금까지 12개국 수십쌍의 부부에게 정자를 기부했고 100명 이상의 유전적 자손을 낳았다.
두로프는 자신의 정자 기증이 15년 전 불임으로 고통받던 한 친구에게 기증한 데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두로프는 "내 생물학적 자녀들이 서로를 더 쉽게 찾을 수 있도록 DNA를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싶다"라며 "물론 위험이 있지만, 그들의 정자 기증자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적으로 건강한 정자가 부족해 심각한 출산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데, 이를 완화하는 데 일부 기여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 오남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