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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限風光在險峰

모든 일에 대한 槪念을 정확히 알고 살면 좋다. 개념은 세상만사 기본이고 핵심이며 생각과 사고와 사유 기준이다. 개념은 추상성과 상징성, 다의성과 위계성, 객관성과 일반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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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은 정말 인종차별주의자였나

 

뉴;잼 - 처칠은 정말 인종차별주의자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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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

 

지난달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 끝에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기리는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미국 전역을 넘어 전 세계 각지 주요 도시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시위가 격화하면서 군중의 분노는 과거 인종차별적 발언이나 행적으로 과오를 남긴 역사적 인물로 향하고 있는데요. 그 중 한 명이 영국의 저명 정치인 윈스턴 처칠입니다.

 

영국인들에게 처칠은 어떤 인물?

한국일보 자료사진

“장비를 주면 우리가 끝장내겠습니다.”

처칠은 영국인에게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라디오 방송을 통한 명연설로 영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지요. 그의 호방한 연설은 국경을 넘어 미국까지 향했는데요. ‘무기를 주면 전쟁을 끝내겠다’는 말로 연합군이 ‘승리길’을 걷게 한 인물이 바로 처칠입니다. 흔히들 처칠을 ‘2차 세계대전 승리의 주역’이라고 평가하는 배경이지요.

처칠은 군중의 귀를 사로잡는 매력적인 화법과 수려한 언변으로 수많은 명언과 명연설을 남겼고요. 활력과 자신감 넘치는 겉모습 안에는 뛰어난 그림 실력과 달필가로서의 재능이 있었습니다. 그 비결은 엄청난 독서량이었다고 하죠. 학창 시절은 모범생보다는 ‘불량 학생’이라는 기록이 남지만, 그의 이름을 딴 학교가 10여곳에 이른다는 건 그의 ‘반전 매력’을 더욱 부각하는 지점입니다. 오늘날 영국 총리인 보리스 존슨을 비롯해 수많은 후배 정치인들이 그를 동경하는 이유죠.

처칠은 2002년 BBC가 발표한 영국인 100만명이 꼽은 ‘위대한 영국인 100명’ 중 1등에 오르기도 했어요. 아이작 뉴턴이나 셰익스피어를 제치고 말이에요.

처칠이 인종차별주의자? 동상 낙서로 시끄러운데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처칠은 인종차별주의자였다.’ 런던 의회 광장에 세워진 처칠 동상에 쓰인 낙서입니다. 낙서를 직접 했다고 밝힌 남성은 복면을 쓴 채 영국 언론과 인터뷰를 하며 “처칠은 순전히 식민주의를 위해 싸웠다”며 “역사상 최대의 식민제국을 건설해놓고는 (이제 와) 평화롭게 대화하자는 식은 용납할 수 없다”고 분노했습니다.

뭐가 문제가 되는 걸까요. 그의 일생에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아 있는 1943년 인도 벵골 대기근이 원인입니다. 세계적으로는 평화를 부르짖고 영국인에겐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은 그가 최대 700만이 아사한 벵골 대기근의 배후라는 주장이 뒤늦게 나온 거죠.

인도 출신의 미국인 작가 매드허스리 무커지는 2010년 발간한 저서 ‘처칠의 비밀전쟁(Churchill’s Secret War)’에서 이 같은 주장을 펼칩니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 일본이 미얀마를 점령했을 당시 미얀마를 통해 일본이 인도로 쳐들어올 것을 우려한 처칠이 인도에서 쌀을 대량 수탈해 대기근을 불러일으켰다는 건데요. 영국이 이러한 사실을 담은 회의록 등 기록을 없앴지만, 처칠의 말은 주변인들 일기 등을 통해 남았지요.

 

처칠이 대체 뭐라 했길래

김영사 제공

 

무커지는 책에서 “처칠은 인도 사람들에 대해 거북한 이야기를 많이 했으며 비서에게 ‘인도 사람들이 폭격이나 맞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했다”고 주장했어요. 그의 주장에 따르면 영국인 인도 총독이 식량 원조를 요청하자 처칠이 “(당시 비폭력 단식 투쟁을 하던) 간디는 왜 아직 안 죽었냐”고 비아냥거렸다고 하고요. 리오 에머리 인도 외무장관에게는 “인도인들을 증오한다. 그들은 괴상한 종교를 가진 이상한 족속들이다”라는 폭언을 했다고도 알려집니다.

기록이 모두 사실이라면 처칠은 영국인들에게는 희망의 아이콘이었지만, 인도를 향해선 일말의 동정도 없던 철저한 제국주의자였던 셈인데요. 무커지는 “처칠이 그의 아버지의 생각대로 인도를 대영제국의 왕관에 박힌 보석 중 하나로 여겼다”고 말했습니다. 에머리 장관도 처칠에 대해 “히틀러와 사고방식이 다를 바 없다”거나 “인도 문제에선 처칠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평가했다고 전해집니다.

벵골 대기근으로 아사한 사람은 최소 300만명, 많게는 7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는데요. 이러한 점 때문에 처칠은 “인도 대기근에 대한 인식이 히틀러의 유대인 홀로코스트와 다를 게 없다”는 냉혹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존슨 총리는 처칠 지키기에 나섰던데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국의 고유하고 긴 역사를 ‘포토샵’할 수 없으며 동상 등 공공기념물을 철거하려는 시도는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처칠 동상이 스프레이 낙서와 철거 위협에 시달리자 보리스 존슨 총리는 15일(현지시간) 영국 텔레그래프에 이 같은 기고를 남기며 처칠 동상 수호에 나섰습니다. 존슨 총리는 자타공인 ‘처칠 덕후’로 유명하지요. 처칠을 향한 ‘덕심’은 그의 저서 ‘처칠 팩터’로 이어졌고요. 그의 책 속 처칠은 겉으로는 툴툴거려도 속마음만큼은 한없이 다정하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으로 묘사돼 있습니다. 인종차별적 언행도 물론 포장됐다는 비평을 면치 못하지요.

존슨 총리는 처칠 동상이 위협받는 현상에 대해 “놀랍고 비참하다”고 토로했고요. “그는 영웅이었다. 의회 광장에서 그의 동상을 제거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마다 숨을 다해 저항하겠다는 외침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라며 격분했지요.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AP=연합뉴스

 

처칠 동상을 바라보는 그의 후손들도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지요. 처칠의 손녀 엠마 소움즈는 13일 BBC와 인터뷰에서 “시위가 계속된다면 할아버지 동상을 박물관에 보관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며 걱정하는 태도로 말했는데요. 소움즈는 “영국을 단결시킨 할아버지가 인종차별주의자의 상징으로 취급 받는다는 게 무척 슬프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처칠이 살던 시대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상황이 다른데, 같은 잣대로 인권 문제를 바라보는 게 합당하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소움즈는 오늘날 인종차별 항의 시위에 대해 “역사를 현재의 프리즘으로만 보려는 시대에 있다”며 “할아버지는 강력하고 복잡한 사람이었고, 인생 전반적으로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이 무한한 사람이었다”고 묘사했습니다.

처칠의 손자로 하원의원인 니콜라스 소움즈도 “이토록 역겨운 방법으로 우리 전쟁 기념비가 훼손될 수 있다니”라며 동상 낙서에 격분했지요.

전쟁이라는 혼란한 사회적 배경에서 매력적인 리더십을 발휘한 처칠을 그의 팬들은 ‘애정 필터’로 바라보는 걸까요. 아니면 시위대가 지나치게 단호한 잣대로 그의 업적은 무시한 채 잘못에만 집중하는 걸까요.

카렌 아티아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 편집인은 레닌과 스탈린, 사담 후세인 등 독재자의 동상이 철거된 사례를 들며 “대중이 널리 지지하면 동상을 무너뜨리는 일 역시 역사적 행위”라고 말했는데요. 처칠 동상에 낙서하며 철거를 하자는 이들과 이에 반대하는 극우단체들의 논쟁도 훗날 역사의 평가를 받게 될 겁니다.

처칠은 정말 인종차별주의자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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