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1,566.7m.태백산맥의 종주(宗主)이자 모산(母山)이다. 함경남도 원산의 남쪽에 있는 황룡산(黃龍山)에서 비롯한 태백산맥이 금강산·설악산·오대산·두타산(頭陀山) 등을 거쳐 이곳에서 힘껏 솟구쳤으며, 여기에서 서남쪽으로 소백산맥이 분기된다.
태백산은 북쪽에 함백산(咸白山, 1,573m), 서쪽에 장산(壯山, 1,409m), 남서쪽에 구운산(九雲山, 1,346m), 동남쪽에 청옥산(靑玉山, 1,277m), 동쪽에 연화봉(蓮花峰, 1,053m) 등 1,000m가 넘는 고봉들로 둘러싸여 있다. 낙동강의 발원지인 이 산은 1,560m의 고봉군(高峰群)이지만 산세는 험하지 않다.
북쪽 사면은 비교적 완만하고 산정 부근에 고위평탄면(高位平坦面)이 잘 발달되어 있으나 서남쪽 사면은 급경사를 이룬다. 태백산지는 함백산과 함께 지질구조가 복잡하며 남한 제일의 탄전지대를 이룬다.
대한석탄공사의 장성탄광을 비롯하여 황지 일대에 많은 탄광이 개발됨으로써 작은 마을에 불과하던 지역이 대표적인 광산도시인 태백시로 승격되었다.
태백산은 천년병화(千年兵火)가 들지 않는 영산(靈山)이며, 단종이 악령(嶽靈)이 되었다 하여 단종의 넋을 위무하기 위한 단종비가 망경대(望鏡臺)에 있다. 또한 이 산에는 태백산사(太白山祠)라는 사당이 있었고, 소도동에는 단군성전(檀君聖殿)이 자리하고 있다. 1989년에 이 일대는 태백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1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1) 지질·지형
태백산 일대는 동해안에 평행하게 북북서 방향으로 종단하는 태백산맥의 한 줄기인 중앙 산맥의 중심부에 해당되며, 여러 방향으로 분기되는 험준한 산봉우리들이 연이어 있다.
주능선의 방향은 태백산을 중심으로 하여 두 줄기로 나누어진다. 장산·태백산·조록바위봉(1,087m)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선캄브리아기(Pre-Cambria紀)와 캄브리아기의 경계 방향 및 장산규암층(壯山珪岩層)의 분포 방향과 상당히 유사하여 이 지질의 지배를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이 능선의 북쪽 부분은 경사 15°이하로 완만한데, 이 지역에는 북북동의 경사 방향을 가진 고생대의 퇴적암류가 분포한다. 이 능선의 남쪽 부분은 25°에 가까운 급경사를 이루는데, 이 지역에는 선캄브리아기의 변성암이 분포한다.
이에 반하여 연화산(1,171m)·태백산·구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구조선에 따른 차별침식과 관련이 있다. 이곳으로부터 옥석산(玉石山, 1,242m)·선달산(先達山, 1,236m)으로 이어지는 남서 방향으로 소백산맥이 분기되며, 태백산맥의 높이는 남으로 가면서 낮아진다. 태백산의 정상 부근은 상당히 평탄한 지역으로 고위평탄면에 해당된다.
이 지역의 하천은 산릉의 방향과 일치하는데, 태백산을 분수령으로 하여 동쪽으로 흐르는 것이 낙동강의 지류이고 서쪽으로 흐르는 것이 남한강의 지류이다.
태백산에서 북동류하는 계류는 함백산에서 발원한 계류와 합류하여 태백시 문곡동 부근에서 황지천(黃池川)으로 흘러들고, 남쪽 사면을 동류하는 하천은 곡류하다가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또한 서쪽 사면을 흐르는 계류는 구운산에서 발원하여 북서류하는 옥동천(玉洞川)과 합류한다.
이 지역의 지질은 선캄브리아기의 변성암류와 이를 부정합(不整合)으로 덮고 있는 고생대·중생대의 퇴적암류, 그리고 이들 지층에 관입(貫入)한 중생대의 화성암류로 구성되어 있다.
선캄브리아기의 고선리층(古善里層)은 녹니석편암(綠泥石片岩)·천매암류(千枚岩類)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은 태백산지의 남부에 광범위하게 분포한다. 고생대의 홍점통(紅店統)과 묘봉층(猫峰層)·대기층(大基層)·화절층(花折層)·막동층(莫洞層)이 북부에 차례로 나타나며, 중생대의 화강반암(花崗斑岩)은 서북부에 산재한다.
산지의 동쪽에는 남북 방향의 함백산대단층(咸白山大斷層)이 있어 동서의 지질 분포를 구분 짓는다. 이 지역은 선캄브리아기에 셰일(shale)과 사암이 두껍게 퇴적된 후 오랜 시일이 지난 뒤 조산운동(造山運動)으로 육화(陸化)되면서 변성작용을 받았다. 고생대 초에 다시 육지가 침강하여 조선기해(朝鮮紀海)를 이루었는데, 이때 퇴적된 사암·셰일·석회암 등이 조선계 지층을 이룬다.
그 뒤 약 1억 년간의 침식 기간을 거친 뒤 고생대 후기에 해침(海浸)을 받아 평안계를 이루었으나 곧 육화되었고, 중생대에 이르러 호소(湖沼)나 하천에서 육성층이 형성되었다. 그 뒤 함백산대단층이 형성되었으며, 곳곳에 화성활동이 있어서 화강암류가 관입하였다.
이 지역은 중생대 말기 이후의 상승요곡운동(上昇撓曲運動)에 따라 간헐적으로 융기하여 높은 산지를 이루며, 당시의 삭박면(削剝面)주 01)이 정상 부근에 남아 고위평탄면을 형성하고 있다.
(2) 기후
태백산 일대는 내륙 고지대에 위치하므로 대륙성기후의 특성이 강하다. 산 북동쪽에 위치한 태백시의 연평균기온은 11.2℃이고, 1월 평균기온은 -3.1℃, 8월 평균기온은 23.8℃로 26℃의 연교차를 나타낸다. 연강수량은 1,019.3㎜이고 증발량은 1,282.4㎜이다. 고지대여서 결빙 일수가 168일이나 되며, 일조율은 44.9% 정도이다.
(3) 생태
조류는 90여 종으로 추정되는데, 그 중 참새류가 50여 종으로 가장 많고 쑥독새류가 1종으로 가장 적다. 개체수로 보면 까마귀·찌르레기·꾀꼬리·참새·멧새·종다리·알락할미새·노란할미새·박새 등이 많고, 촉새·무당새는 희귀한 편이다.
포유류는 25종이 알려져 있으며, 양서류는 꼬리치레도롱뇽·무당개구리·두꺼비·청개구리·참개구리·금개구리 등이, 파충류는 도마뱀·표범장지뱀·유혈목·무자치·능구렁이 등이 있다.
어류는 수계(水系)에 따라 분포에 차이가 있다. 남한강수계의 어종은 보통종으로, 버들치·피라미·미꾸라지·종개·퉁가리·메기·둑중개·동사리 등이 있고, 희귀종으로 열목어·연준모치·참종개 등이 있다. 이 중 참종개는 한국특산어종에 속한다.
낙동강 수계는 보통종으로 다묵장어·뱀장어·버들치·피라미·긴물개·붕어·미꾸라지·자가사리·메기·둑중개·꺽지 등이 있고, 희귀종으로 연준모치·수수미꾸라지 등이 있다. 이 중 긴물개·자가사리·수수미꾸라지 등은 한국특산어종이다. 오십천(五十川) 수계에도 버들개는 있으나 유량이 적어 어류가 빈약하다.
곤충류는 340여 종이 있는데 이 중 나비류 83종, 딱정벌레류 71종, 벌류 64종, 파리류 61종, 노린재류 43종 등으로 이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식물은 635종이 있는데 이 중 14종은 한국특산식물이다.
이 지역은 연평균기온이 10℃ 내외이고 연강수량도 1,000㎜ 정도로 냉온대에 속한다. 온량지수(溫量指數)가 85∼100이므로 낙엽광엽수림대에 해당한다. 산록부에는 아카시아나무·상수리나무·밤나무·떡갈나무 등이 많으며, 하천 주변 지대에는 갯버들·갈대·삿갓사초·물봉선화 등이 혼재한다.
산 중턱에는 소나무·일본잎갈나무·졸참나무·물박달나무·너도밤나무·고로쇠나무·생강나무·층층나무·가래나무·물푸레나무 등이 혼합림을 이루고 있고, 중턱 위로는 신갈나무·철쭉·거제수나무·사스래나무·자작나무 등이 혼재하며, 정상부에는 분비나무·주목·잣나무 등의 천연 침엽수림군계가 발달한다.
이 지역의 희귀식물로는 태백말발도리·좀바위솔·들솜쟁이·산토끼풀·호범꼬리·톱바위취·노랑무늬붓꽃·주목·참꽃나무겨우살이·참바위취·바위괭이눈·노랑만병초·멍석딸기 등이 있다.
선사시대의 유물이나 전설은 남아 있는 것이 없으며, 《삼국사기》·《삼국유사》에 처음으로 그 명칭이 보인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태백산은 토함산(吐含山)·지리산(智異山)·계룡산(鷄龍山)·부악(父嶽)주 02)과 함께 신라의 오악(五嶽) 가운데 하나로서 북악(北嶽)에 해당하였으며, 중사(中祠)의 제행이 행하여졌다.
《삼국유사》에는 자장(慈藏)이 문수(文殊)를 만나 법요(法要)를 토론한 뒤 태백산 갈반지(葛蟠地)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이곳에 와서 석남원(石南院)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삼척 읍지인 《삼척진주지 三陟眞珠誌》 척주부(陟州賦)에는 태백산의 명칭에 관하여 “태백산 중에서 가장 높고 흰 산이 문수산이며, 여기에 흰 모래와 자갈이 눈 덮인 듯이 쌓여 있어 산 이름을 태백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옛날 통신수단으로 쓰인 봉수대 자리가 지금도 있고, 이 밖에 산성터·낙벽사·구령사 등의 절터가 있다. 단종의 묘인 장릉(莊陵)이 여기서 멀지 않은 영월에 있으므로 단종이 백마를 타고 태백산에 들어와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여기에 연유하여 태백산 산정에는 ‘朝鮮國太白山端宗大王之碑(조선국태백산단종대왕지비’라 쓰인 단종비가 세워져 있다.
또한 예로부터 명산으로 알려져 토속신앙이 성하였으며, 정상을 비롯하여 계곡에 사찰과 기도처가 많았으나 1970년대에 정리가 되어 현재는 작은 사찰 4개와 정상 부근과 당골, 유일사 길목, 백단사 옆 계곡 등에 몇 개의 기도처가 남아 있다.
망경대에 태백산사(太白山祠)라 불리는 사당이 있어 산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봄·가을에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 이때에는 제수로 소를 잡아 쓰는 것이 아니라 산 소를 산정 제당까지 몰고 가 제당 앞에 매어놓고 제사를 지낸 다음 소를 그곳에 매어둔 채 제관들이 하산하였으며, 이때 뒤를 돌아보면 불공하다 하여 뒤돌아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3일 뒤에 그 소를 몰아 내려오는데, 이렇게 태백산제의 제수로 쓰였던 소를 퇴우(退牛)라 불렀다. 이 습속은 조선 시대에 있던 것으로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태백산 여러 곳에 있는 토속신앙의 기도처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은 태백시 소도동(所道洞), 속칭 당골에 있는 산신당으로, 이 당골이라는 명칭도 신당이 있다는 데서 연유하여 생긴 것이다. 현재의 태백시민헌장비(太白市民憲章碑)가 있는 곳에서 등산로를 따라 500m쯤 올라가면 거대한 당목이 아직 남아 있고, 그 옆에 사당터가 있다.
당집은 1970년대 태백산 내에 있는 토속신앙을 정화할 때 헐렸고, 지금은 가로 14m, 세로 10m 정도의 축대 위에 시멘트 벽돌 제단이 있는데 기도하는 사람이 많아 늘 향이 타고 촛불이 켜져 있다.
이곳에는 또한 단군성전이 있는데 전면 3칸, 측면 2칸의 공포집으로 최근에 지었으며, 단군의 화상을 봉안하고 해마다 개천절에 단군제를 지내고 있다.
이 건물을 짓고 여기서 단군제를 지내기 전에는 만경대의 천왕당(天王堂)에서 태백산록 경상북도 봉화군 사람과 강원도 삼척시 사람들이 함께 모여 단군제를 지냈다.
그런데 처음에는 순수한 조상신제(祖上神祭)이던 것이 주관자에 따라 점점 무속제의식(巫俗祭儀式)으로 변질되자 삼척의 일부 인사들이 따로 단군봉사회를 조직하고 성금을 모아 1978년당골에 단군 성전을 새로 건립하고 제를 지내게 되었다.
태백산의 문화유물로는 사찰과 함께 토속신앙의 기도처가 많이 남아 있다. 사찰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정암사(淨巖寺)이다. 《삼국유사》에 자장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석남원이 바로 이곳으로, 그 경내의 수마노탑(국보, 2020년 지정)은 자장이 당에서 가지고 온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한 것인데 전형적인 전탑의 하나이다.
이 탑은 벽돌 크기의 탑재를 한장한장 쌓아서 만들었는데, 흔히 보이는 석탑과는 축조방식이 달라 이와 같은 축조 방식의 탑은 전국적으로 그 수가 많지 않다.
봉화 쪽에는 조선시대 사고(史庫)의 하나인 태백산사고가 있다. 한편, 태백산록인 삼척시 도계읍 신리에 있는 화전민촌의 너와집을 비롯한 민속 유물들이 1975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마을은 외부와의 교통이 좋지 않은 산간오지로 현대문화의 수용이 늦어 최근까지도 격리된 생활을 하였으며, 옛날의 산간 민속이나 생활용구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지정 자료는 너와집 2채·물레방아·통방아·채독·나무통(김치통)·화티(화투)·살티(살피 또는 설피)·창(槍)·주루막 등이다.
태백산은 예로부터 신령한 산으로 여겨져 왔기에 여러 개의 사찰과 토속신앙의 기도처가 있으며, 여기서 연유한 전설이나 민담이 남아 있다. 먼저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자장에 얽힌 다음과 같은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자장이 태백산 갈반지에서 문수를 만나기로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노거사(老居士) 한 사람이 누더기 가사를 입고 칡삼태기에 죽은 개 한 마리를 담아들고 와서는 자장을 보러 왔다고 하였다.
그러자 자장이 그 행색을 보고 미친 사람이라 하여 내쫓으니 노거사가 말하기를, “자장이 해탈의 경지에 든 사람인 줄 알고 찾아왔는데 아직도 그 경지에 들지 못하였구나. 사람을 잘못보고 왔으니 돌아가겠다.” 하고 삼태기를 땅에 내려놓으니 죽은 개가 사자가 되어 이를 타고 빛을 내면서 가버렸다. 자장이 이 말을 듣고 빛을 좇아 남령(南靈)에까지 올라갔으나 끝내 만나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한 《삼국유사》에는 진정(眞定)의 출가수도도 그 배경이 태백산으로 되어 있다. 진정이 졸오(卒伍)에 있으면서 홀어머니를 봉양하던 중 당대의 고승 의상이 태백산에서 법연을 연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 가고자 하였으나, 차마 어머니를 두고 갈 수가 없어 눈물을 흘리며 떠나지 못하였다.
이것을 본 어머니가 도리어 아들의 나약함을 꾸짖어 입산을 시키니, 태백산에서 의상의 제자가 되어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으며 법호를 진정이라 하였다.
태백산은 이름이 있는 산이기에 시문이 많으나 오늘 전하고 있는 것은 거의가 한문으로 된 한시문이 많고 개화 이후의 국문으로 된 시문은 거의 없다.
《삼척진주지》의 척주부에는 “푸르고 푸른데 어찌 태백이라 하였던가. 그 위에 당집을 짓고 천왕이라 이름 하였네. 신라·고려 때부터 숭상하여 믿었고, 모두 무당과 박수의 도회로세. 저 동쪽을 바라보니 팽나무도 많고, 저 남쪽을 돌아보니 크고 높은 언덕도 많네(何蒼蒼兮太白 堂其上而天王 自羅麗而崇信 儘巫覡之都會 瞻彼東兮大朴 睠其南兮萃覺).”라고 하여 태백산이 신라·고려 때부터 토속신앙의 중심지였음을 말하고 있다.
고려 시대 최선(崔詵)의 예안(禮安)「용수사기 龍壽寺記」에는 “천하의 명산이 삼한(三韓)에 많고, 삼한의 명승은 동남쪽이 가장 뛰어나며, 동남쪽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 태백이다.”라고 하였다.
역시 고려 시대의 안축(安軸)은 태백산을 소재로 하여 “길다란 동천을 지나 자연에 들어가니, 비로소 높은 꼭대기에 오른 줄 알았노라. 둥근 해는 머리 위에 낮아진 듯, 사방의 여러 산이 눈앞에 떨어졌네. 몸이 나는 구름을 따르니 학을 탔는가 의심되고, 길은 높은 비탈에 달려 하늘에 오르는 듯하구나. 비온 뒤 일만 골짜기에 물이 넘쳐 흐르는데, 구불구불한 오십천을 건널 일이 근심된다(直過長空入紫烟 始知登了在高巓 一丸白日低頭上 四面群山落眼前 身逐飛雲疑駕鶴 路懸危磴似梯天 雨餘萬壑奔流漲 愁度縈洄五十川).”라는 시를 남기고 있다.
또한 조선 시대의 김시습(金時習)은 「망태백산 望太白山」이라는 시에서 “멀고 아득한 태백산을 서쪽에서 바라보니, 기암괴석이 구름 사이에 솟아 있네. 사람들은 산마루 신령님의 영험이라 말하는데, 분명코 천지의 조화로세(西望遙遙太白山 碧尖高揷聳雲間 人言嶽頂神靈異 辨得乾坤造化關).”이라 하였다.
홍우원(洪宇遠)은 “얽히고 설킨 뿌리도 많고 높이 솟은 형세 구름 사이에 들어 있네. 높은 봉우리는 온갖 흰 옥이 선듯하고 절벽에는 온갖 산울림이 들리네. 소란스럽고 어지러운 세상에 한가롭게 새·짐승 떼지어 다니누나. 무릉도원 깊은 곳에 자리잡고 나의 속세마음 씻고자 하네(合沓盤根大 岧嶢勢入雲 危峰千玉立 絶壑萬雷聞 懮懮干戈世 閑閑鳥獸群 桃源定深處 吾欲謝塵氛).”라 하였다.
이 밖에도 조선 후기 김방걸(金邦杰)을 비롯하여 한말의 우국지사인 송병선(宋秉璿)·곽종석(郭鍾錫) 등 널리 알려진 사람들의 시문들이 남아 있다.
태백산은 육산으로 금강산이나 설악산처럼 기암괴석으로 되어 있는 경승이 없어 시문에 묘사된 모습도 금강산과 같은 정취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산이 높고 주위에 높은 봉우리들이 서로 이어져 능선을 이루고 있으므로 선계(仙界)와 같은 느낌을 주어 시문에도 신선의 영상과 산정의 영이(靈異)함이 자주 도입되었다.
이는 태백산이 신라 이래로 제행이 올려지는 오래된 신앙처였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또한, 군봉을 이루고 있는 탓으로 삼척의 오십천 등과 같이 태백산에서 연유한 계류가 많아 산정에 못지않게 계류에 대한 묘사가 시문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1) 부존자원
태백산 일대는 산림자원이 풍부하였다. 특히 양질의 소나무가 많은데, 태백산 서쪽 춘양(春陽)에서 나는 소나무는 ‘춘양목’으로 유명하였다. 또한 동쪽의 원덕면 일대에서도 많이 생산되었다.
근년에 이 지역이 석탄 산지로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주변의 소나무를 광산의 갱목으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나무를 벌채한 뒤 낙엽송을 식재(植栽)하여 태백산 주변에는 낙엽송 군락이 많아졌다.
이 지역의 석탄 개발로 수송에 필요한 교통로가 건설되어 있기는 하나, 워낙 험준한 산간오지인 탓으로 아직도 교통이 불편한 지역이 많이 남아 있다. 광산 주변은 벌채로 인하여 산림자원이 고갈되어가고 있지만 오지에는 적송과 잡목 등 임상(林相)이 좋은 곳이 많다. 태백 산지는 지하자원의 보고이다.
도계·장성·황지·고한·함백·사북 등은 석탄 산지로서 탄광 때문에 생긴 도시인데, 이 일대는 매장량·생산량에 있어서 국내 제일이다. 또한, 영월군 상동(上東)에는 우리 나라 제일의 중석광산이 있다.
이 지역에서 석탄 개발이 시작된 것은 1937년 일본인이 조선무연탄주식회사로부터 광업권을 양도받아 삼척개발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도계에서 채탄 작업을 하면서부터이다.
1945년 광복 후에는 종업원들의 자치제로 운영되다가 1948년 정부가 수립되자 상공부 광무국 관할로 운영되었다. 1950년 대한석탄공사가 발족하여 도계·장성 두 광업소에서 채탄을 하였다.
그 뒤 석탄 수요가 급증하자 석탄 채굴이 확대되어 1960년대에 들어 황지에서 본격적인 채굴이 이루어졌다. 함백·고한·사북·예미 지역은 민영 탄광이 들어와 태백산 일대의 석탄 생산이 본격화되었다.
이들 탄광취락은 원래 작은 한촌에 불과하였으나 석탄 개발 이후 산업철도가 전철화되는 등 교통이 원활하게 되어 도시로 발달하였다. 특히, 장성과 황지는 병합되어 태백시로 승격하였다. 석탄 개발 초기에는 지표 가까운 곳에서 채탄하였으나 오늘날에는 갱도가 깊어지고 에너지정책에서 석유에 밀려 사양길을 걷고 있다.
(2) 관광자원
고한읍의 정암사 경내에는 수마노탑이 있고, 주변 계곡에는 열목어서식지(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가 있다. 도계읍에는 높이 20m, 둘레 7.5m의 긴잎느티나무(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와 석회동굴인 대이리동굴지대(천연기념물, 1966년 지정)가 있다.
대이리동굴은 갈매굴·환선굴(幻仙窟)·관음굴(觀音窟)·제암풍혈(梯巖風穴)·양터목세굴·덕발세굴·큰재세굴 등 크고 작은 동굴들이 흩어져 있는데, 이 중 대표적인 환선굴은 해발 500m 지점에 위치한다. 환선굴은 높이 15m, 너비 20m이고, 100m 들어가면 4개로 나누어진다. 이들 관광자원은 개발이 되지 않아 교통이 불편하여 찾는 사람이 적다.
이 밖에 태백시의 황지는 낙동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다. 태백산 정상은 사방을 조망하는 경관이 좋고 토산(土山)인 관계로 쉽게 오를 수 있어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다. 등산로는 소도동 쪽 길과 백단사 방향 등 몇 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