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살해 범죄에 명예란 없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각) 아버지에 의해 목졸려 살해 당한 이라크 여성 티바 알 알리(22)의 죽음에 항의해 5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최고사법위원회 인근에서 벌어진 시위에 참여한 이들이 들고 있던 현수막에 적혀 있던 구호다. 이날 "여성 살해를 멈춰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든 여성단체 활동가들을 포함한 수십 명 규모의 시위 참여자들은 가정 내 여성 폭력에 관한 법 제정을 요구했다고 카타르 알자리라 방송이 보도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시위에 참여한 로즈 하미드(22)는 "우리는 여성을 보호하는 법률, 특히 가정 내 여성 폭력에 대항하는 법률을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어 "다음 희생자는 누가 될 것인가"라며 법의 보호 없이는 여성 폭력 희생자가 늘 수 밖에 없음을 시사했다.
이 사건은 지난 3일 사드 만 이라크 내무부 대변인에 의해 공표됐다. 만 대변인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지난달 31일 남부 디와니야에서 피해자가 아버지에 의해 살해됐고 아버지는 자수했다고 밝혔다. 만 대변인은 사건의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AP> 통신 등 외신은 이란 여성단체가 사건 전날 밤 피해자가 부모와 다툼 끝에 폭행을 당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음성 녹음을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이 검증되지 않은 녹음본엔 피해자가 남성 형제에게 성폭력을 당한 뒤 이라크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데 대한 부모의 질책 및 아버지가 피해자를 폭행해 피해자가 고통 속에 비명을 지르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통신은 이후 아버지가 딸이 자는 사이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전했다.
피해자는 2017년 독립해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거주 중이었고 시리아 출신 연인과 함께하는 튀르키예에서의 일상을 유튜브에 편집해 올려 2만 명 이상의 구독을 확보한 상태였다고 한다.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피해자는 지난달 열린 국제 축구대회 아라비안 걸프컵 관람 차 이라크를 방문했고 이를 알게 된 가족들이 그를 디와니야 집으로 끌고 갔다. 매체는 피해자의 아버지가 경찰에 자수하며 "수치를 씻기 위해" 딸을 죽였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활동가들은 가족 내 여성 살해가 반복되는 이유로 이에 관대한 사법 제도를 꼽는다. 이라크에서는 남성이 아내를 "처벌"하는 것이 교사나 부모가 아동을 "훈육"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법적으로 허용된다. 간통을 이유로 아내 혹은 여성 친족을 살해한 남성에겐 최고 3년 형까지만 선고할 수 있다. '명예로운 동기'로 살인을 저질렀다면 감형이 가능하다.
다만 '명예로운 동기'에 대한 세부적 정의는 없어 해석의 여지가 크다. 실질적으로는 여성 가족 구성원의 성을 통제한다는 구실을 통해 여성 폭력 및 살해 수단, 이른바 '명예 살인'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5일 시위에 참여한 이스라 알 살만은 <AP>에 이번 사건에서 딸을 죽인 아버지가 처형돼야 한다며 "여성을 죽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여성이 불명예를 저질렀다고 비난한 뒤 죽인다"고 지적했다.
이라크 여성단체들은 아내 폭력에 대항하는 법안을 2014년부터 강력히 요구하고 있지만 알자지라는 "이혼이 늘고 부부 간 적대감을 키우며 사회의 뼈대를 침식한다"는 이유로 법안이 의회에서 표류 중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앰네스티는 3일 성명을 내 "알리 살인은 반드시 조사돼야 하며 형은 이 끔찍한 범죄의 무게에 상응해야 한다"며 "이라크 당국이 젠더 기반 폭력에서 여성과 소녀를 보호할 강력한 법안을 채택할 때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이런 끔찍한 살인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