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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限風光在險峰

모든 일에 대한 槪念을 정확히 알고 살면 좋다. 개념은 세상만사 기본이고 핵심이며 생각과 사고와 사유 기준이다. 개념은 추상성과 상징성, 다의성과 위계성, 객관성과 일반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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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키우는 건 상류층 전유 문화였다 | 루이 14세는 궁정화가에게 반려견 그림 그리게 했다

명화 속 반려견들

찰스 버튼 바버, '특별 변호인', 1893년, 캔버스에 유채, 97 x 127.6 cm, 개인 소장

 

: 김선지

명화 속 반려견들

 

오랜 인류사를 통해 동물은 인간과 함께해왔다. 특히, 개는 선사시대부터 인간의 동반자로서 사랑을 받았다. 이번 한국일보 칼럼은 '명화 속 반려견'으로, 간략한 애견문화의 역사, 그리고 그림 속에 묘사된 인간과 반려견의 모습을 살펴본다.

 

작은 소녀가 벽 구석에 시무룩하게 기대어 서 있다. 아마도 집 안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부모에게 꾸중을 들은 것 같다.

 

옆에는 보더 콜리 종의 반려견이 화면 밖 누군가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어린 주인의 잘못을 용서해달라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장난꾸러기 소녀가 처한 상황과 기분에 공감하고 연민을 드러내는 개다.

 

화가는 동물을 흥분, 갈망, 슬픔 등 인간의 표정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한 것이다.

 

찰스 버튼 바버(Charles Burton Barber)는 동물 그림으로,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 큰 성공을 거둔 화가다. 궁정화가인 바버는 빅토리아 여왕 부부와 아이들, 개가 있는 왕실 초상화들을 그렸다.

 

바버는 어린이와 동물을 함께 그린 매우 감상적인 초상화로 유명했다. 그는 이런 작품들에서 애정으로 연결된 개와 인간의 특별한 관계를 표현했다. 그림의 시대적 배경인 19세기 영국에서는 두 가구 중 거의 한 집이 개, 고양이, 물고기, 새 같은 동물들을 애완용으로 길렀다.

특히, 개는 충성스럽고 용감한 동물이라고 여겨져 사랑받았다. 빅토리아 시대는 복음주의와 엄격한 도덕주의로 특징 지워진다. 동물을 기르는 것은 생명체를 돌보고 헌신하는 일이며, 어린이가 선함과 친절을 배우는 수단이라고 생각해 널리 권장되었다.

 

사실, 개는 선사시대부터 인류와 함께해왔다. 36,500년 전 벨기에의 고예트 동굴에서 개 유골과 여러 유물이, 3만 년 전 인도 빔베트카 동굴에서는 41마리의 개를 그린 암각화가 발견되었다.

 

구석기인들은 개를 길들이고 같이 생활했던 것이다. 개는 충실한 동반자, 사냥꾼, 친구이자 보호자로서 가족의 소중한 일원이었다. 한편, 이런 쓰임보다는 순전히 인간의 즐거움과 유희를 위한 애완견들도 생겨났다.

 

원래 애견문화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에서는 부유한 귀족계층이 개를 애완용으로 길렀다.

 

중국에서도 한나라, 당나라,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사자개(페키니즈)가 궁정 여성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황실 권위의 표상인 사자개를 일반인들이 기르지 못하게 법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렇듯, 동서양을 막론하고 개는 왕실이나 귀족계층의 사치품이자 부의 상징이었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부터 중산층 사이에서도 애견문화가 보편화되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개와 고양이를 기르고 있고 반려동물을 위해 기꺼이 돈을 쓴다. 이런 흐름을 업고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 서비스, 각종 용품, 전용 미용실과 스파, 호텔 등 반려동물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반려동물 관련 사업도 현대만의 특성은 아니다. 고대 이집트와 로마 시대 사람들은 동물들이 죽으면 묘비를 세워주고 묘비명까지 새겼다. 시대에 따라 개목걸이 패션도 다채롭게 변화했다.

 

중세 유럽의 경비견과 군견은 뾰족한 장식이 박힌 목걸이, 사냥개는 가죽 목걸이를 했고, 귀족들의 반려견은 금, 은이나 보석이 박힌 사치스러운 목걸이를 걸고 다녔다.

 

왕실견들은 정교하고 아름다운 장식이 있는 밥그릇으로 고급 음식을 먹었고, 하인들의 시중을 받았으며, 벨벳이나 실크로 만든 쿠션에서 잠을 잤다. 고대 중국 한나라 영제는 자신의 개들에게 작위를 내리고 최고의 음식, 호사스러운 깔개를 하사했다.

 

요즘 반려동물과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는 이들이 많다. 르네상스 귀족 초상화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시기 남성 초상화에는 그레이하운드 같은 몸집이 큰 사냥개가 그려졌고, 무릎에 앉힐 수 있는 작은 랩독(Lapdog)은 여성 초상화에 등장했다. 몰티즈 같은 작고 귀여운 개들이 귀부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위 초상화에서 랩독을 안고 화가 앞에서 포즈를 잡은 귀부인의 개는 반려견이 아니라 애완용으로 보인다.

 

주인의 호화로운 차림새를 돋보이게 하는 일종의 장신구, 혹은 패션 아이템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개는 주인이 데리고 놀면서 즐기기 위한 장난감 같은 존재였다.

 

최근에는 '정치적 올바름'의 일환으로 애완동물(pet) 대신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이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동물권,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이다.

 

한편으로는, 강아지 공장에서 인간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개량된 개들이 생산되고, 선호하는 반려견의 품종이 상품처럼 유행 따라 바뀌며, 유기견이 양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시대의 개는 애완견일까, 반려견일까?

 

루이 14세는 궁정화가에게 반려견 그림 그리게 했다

 

글: 김연주

지난달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전체의 15%나 된다고 해요. 주변을 둘러보면 동물 병원과 미용실은 물론이고 반려동물과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카페 등 편의 시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가족이 여럿인 가구뿐 아니라 혼자 사는 1인 가구도 반려동물을 많이 키우는데,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몸과 마음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그중에서도 길게는 수만 년 전부터 인간과 함께 지내온 개는 예나 지금이나 대표적인 반려동물이다. 학자들은 야생의 무리를 떠난 늑대가 인간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인간에게 길들여져 개로 진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개는 사람들이 사냥을 나갈 때 함께 나가 큰 공을 세우는가 하면, 양몰이 등 가축을 감시하는 역할도 했다. 냄새를 잘 맡고 귀가 밝아 시각장애인을 인도하거나 저택의 경비를 책임지기도 하지요. 오늘은 명화 속에 나오는 개 이야기를 살펴보자.

명작 속 개들

▲   ①알렉상드르 프랑수아 데포르트 ‘루이 14세의 개들, 디안과 블롱드’(1702년). ②이암 ‘모견도’(16세기 전반). ③토머스 게인즈버러 ‘아침 산책’(1785년). ④헤라르트 테르 보르흐 ‘개의 벼룩을 잡는 소년’(1655년쯤). ⑤장 바티스트 그뢰즈 ‘말썽꾸러기’(1765년). /국립중앙박물관·이주은 교수 제공

태양왕의 애견들

<작품 1>'태양왕'이라 불린 프랑스 루이 14(1638~1715)가 사냥에 데리고 다녔던 포인터 두 마리를 그린 '개 초상화'이다. 루이 14세가 직접 궁정 소속 화가에게 그리라고 지시한 것을 볼 때, 왕이 가장 예뻐한 개였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림에 디안(Diane)과 블롱드(Blonde)라는 개 이름도 적혀 있다. 개들은 그림의 왼쪽 아래에 있는 새들을 사냥감으로 노리고 있어요. 그림에는 새의 몸통 뒷부분만 보인다. 개들의 접근을 미리 알아챈 새 한 마리는 날쌔게 하늘로 날아올라 도망치고 있다. 디안과 블롱드는 왕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사냥 나갈 때 앞장섰을 뿐 아니라, 평소에는 왕의 방 입구에 앉아 왕을 지키는 특별 임무까지 맡았다고 한다.

 

개와의 산책 풍경

 

우리나라의 옛 그림 중에도 개 초상화가 있다. <작품 2>는 조선 시대 화가 이암(1499~미상)이 그린 '모견도'이다. 이암은 왕실의 후손으로 동물 그림을 잘 그렸다. 이 그림 속 개들이 그의 애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미 개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새끼들을 바라보고 있고, 한 새끼는 어미 등에 올라타 곤히 잠들어 있고, 다른 새끼들은 품속을 파고들며 어여쁜 재롱을 피우고 있다.

 

사람과 개가 함께 등장하는 그림을 볼까? <작품 3>은 영국 화가 토머스 게인즈버러(1727~1788)가 그린 '아침 산책'이다. 이 그림에는 부부의 산책길에 동반한 흰색 개가 등장합니다. 궁전에서 지낸 루이 14세의 개들 못지않게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개는 야외에 나가 바람을 쐬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산책하는 모습이 눈에 잘 띈다. 요즘에도 동네 공원에 나가면 개와 함께 걷거나 뛰는 사람들을 아침저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게인즈버러는 풍부한 자연 풍경 속에 인물을 배치하는 그림을 즐겨 그렸다. 풍경화와 초상화를 결합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개도 인물들 사이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게인즈버러가 살던 18세기 후반에 영국 상류층 사이에서 최고 인기를 누린 그림 주제 역시 아름다운 전원 속에서 개와 함께 산책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주인과 개의 우정

서민 가정에서 키우는 개는 어떤 모습으로 그림 속에 나올까? <작품 4>를 보라.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가 헤라르트 테르보르흐(1617~1681)가 자기 아들을 모델로 그린 '개의 벼룩을 잡는 소년'이다. 차분한 빛으로 가득한 검소한 분위기의 실내를 배경으로, 개를 아끼는 소년과 주인을 믿고 의지하는 개 사이에 잔잔한 우정이 오가는 게 느껴진다.

 

<작품 5>에서도 서민 가정의 소년과 개가 나온다. 18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프랑스의 화가, 장 바티스트 그뢰즈(1725~1805)가 그린 '말썽꾸러기'이다. 그뢰즈는 중산층이나 일반 서민층의 어른과 아이에게 교훈이 될 만한 내용을 주로 그렸다. '말썽꾸러기'는 편식하는 소년이 음식을 먹는 척하면서 숟가락으로 떠서 발밑에 있는 개에게 몰래 주는 모습이다. 싫어하는 음식을 먹지 않으려는 것이지 개를 위한 우정의 행동은 아니다. 소년의 엄마로 보이는 오른쪽 여인은 아이가 잔꾀를 부리는 걸 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꾸중 대신 상냥하게 타이르려 하는 것 같습니다. 올바른 가정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한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림 속의 개를 보면 사람이 개와 지낸 시간과 더불어 개를 통해 인간 세상을 빗대어 표현하고자 한 화가의 의도까지 엿볼 수 있다.

 

[앤디 워홀이 사랑한 개]

예술가 중에서도 개를 아낀 이가 많았다. '팝아트의 왕' 앤디 워홀(1928~1987)에겐 아모스와 아치라는 닥스훈트 두 마리가 있었다. 워홀은 둘을 끔찍이 아껴 그림으로도 남겼다. 아모스와 아치가 수의사에게 다녀온 날 워홀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인생은 너무나 짧고 개의 삶은 더더욱 짧다." 인간보다 개의 수명이 짧은 것을 안타깝게 여긴 것이지만, 결국 세상을 먼저 뜬 것은 워홀이었어요. 그는 이 일기를 쓴 날로부터 두 달 후 수술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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