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보다 상담을 위주로 진료를 하다 보면 간혹 듣는 질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대개 ‘내가 너한테 이야기를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라는 느낌으로 경계하는 표정입니다.
진료실에 들어오면서 주변을 살피고 몸은 긴장되어 있고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이 느껴집니다. 대화를 나누려 시도하면 ‘이 의사는 약이나 빨리 주고 보내주지, 왜 자꾸 나에게 말을 하라고 하나?’라는 눈빛을 보내옵니다.
진료에 대한 거부감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꺼려지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누구나 내 마음속 깊이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기란 어렵습니다. 내용 자체가 비밀스럽고 부끄럽기도 하고 웃음거리가 될 거라 느끼기도 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까지 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곤란하다고 하니 난감하지만 언뜻 이해도 됩니다.
정신과 약물이 없던 시절에는 정신과 의사의 치료 방법은 대화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서양의학에서 이 대화라는 치료 방법이 생긴 것도 1800년대 후반부터였습니다. 그보다 전에는 정신과 질환에 대해 더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종교적인 문제로 보고 마녀사냥을 하기도 하고 마을에서 몰아내며 사회적으로 철저하게 격리시켰습니다. 그러던 와중 산업사회와 르네상스를 거치며 정신적인 질환에 대해 과학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장 마르탱 샤르코의 최면요법이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이런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한 정신의학적 치료의 초기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면 상태이나 맑은 정신에서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두 가지 방법 모두 내 마음 깊은 무의식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말로 표현합니다.
지금은 정신분석 뿐 아니라 인지행동치료, 마음 챙김 치료, 스키마치료 등 다양한 방법들로 마음의 상태를 바라보고 이야기로 풀어내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런 치료기법들이 학술적으로는 복잡한 내용이지만 그래도 정신과 진료에서 기본은 내 마음 안에 답답한 응어리를 말로 털어 놓는 과정입니다.
마음 안에 여러 복잡한 감정과 생각은 그 자체로 두면 줄기보다 불어납니다. 잠자리에 자려고 누웠을 때 그 날의 고민이나 걱정을 시작하면 생각은 점점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극단적인 상황을 떠올리며 잠을 설치는 경험을 흔히 합니다. 이런 생각들은 담아두기 보다는 털어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 안에 모아두었던 응어리를 말로 털어내면서 그런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면서 바라보게 됩니다. 말로 풀어내도되지만 글로 풀어내는 것도 좋습니다.
그저 어딘가 쏟아낸다는 것만으로도 꼬리를 무는 생각의 흐름은 조금이나마 줄어듭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신뢰하고 의지할 만한 그 누군가에게 털어놓는다면 더욱 좋습니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으면서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마음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와의 대화 속에서 나는 상대방의 반응을 통해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내 안의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치료에서 관계가 주는 긍정적인 힘인 셈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어렵게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내 마음을 털어 놓는 것이 왜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있는 옛날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모자 장수입니다.커다란 귀로 인해서 고민을 하던 임금님이 이 모자 장수를 불러 자신의 귀를 감추어줄 모자를 만들어 달라고 시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귀에 대해 절대로 말을 해서는 안 되고 소문을 내면 일족을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합니다. 임금님이 만족할만한 모자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이후에 생깁니다. 속에 커다란 고민을 안은 채 살아가던 모자장수는 결국 큰 병을 얻습니다.
마음의 부담이 몸의 병으로 옮겨간 셈입니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 모자장수는 고민 끝에 마을 뒷산에 대나무 숲으로 가서는 큰소리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칩니다. 다들 알고 계신 이 이야기를 제가 다시 하는 이유는 이후에 이 모자장수의 병이 씻은 듯이 낫기 때문입니다.
마음 안에 담긴 응어리는 결국 마음과 몸에 병을 만들지만 그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치료 효과가 있는 셈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이 전래동화는 사실 우리나라의 고유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합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그리스 로마 신화나 중앙아시아에도 있는데 동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 밖에는 없다고 하죠. 아마 신라시대 때 실크로드를 통해 중동과 직접 교역을 하던 와중에 흘러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우리의 대나무 숲이 우물로 바뀌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내 마음속 무거운 이야기를 털어 놓을 대상이 필요합니다. 이런 대상은 가족일 수도 있고 스승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공감할 수 있는 누군가라면 됩니다. 때로는 정신건강 전문가와의 상담도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는 전래동화 속 대나무 숲이나 우물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그 누군가가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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