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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限風光在險峰

모든 일에 대한 槪念을 정확히 알고 살면 좋다. 개념은 세상만사 기본이고 핵심이며 생각과 사고와 사유 기준이다. 개념은 추상성과 상징성, 다의성과 위계성, 객관성과 일반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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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대기서(四大奇書) 장회소설(章回小說) 수호전(水滸傳)

图片信息 水浒传的作者施耐庵 施耐庵写水浒传的用意


수호전(水滸傳)은 중국 명대의 장편소설로 시내암(施耐庵)의 작품이다. 혹은 나관중(罗贯中)과 시내암의 합작(合作)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지(三國志), 홍루몽(紅樓夢), 서유기(西遊記)와 함께 중국 사대기서 중 하나로 꼽힌다.

수호전 108성(水滸傳百八星)은 “수호전(水滸傳)”에 등장하는 108명의 호걸(豪傑)을 가리킨다. 36명의 천강성(天罡星)과 72명의 지살성(地煞星)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제 역사 기록에는 송강(宋江)이 36명을 이끌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72명에 대해서는 언급(言及)조차 없다. 송강은 실제 인물이나 기록에 따라서 송강이 36명에 포함되기도 하고 “대송선화유사(大宋宣和遺事)”같은 책에는 언급이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36명에 대해서는 대부분 그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고 알려진 인물은 양지(楊志), 임충(林冲), 왕영(王英), 노지심(魯智深), 사진(史進), 무송(武松) 정도다. 공식적인 역사 기록상에는 "송강이 36명의 무리들과 결탁(結託)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장숙야(張叔夜)에게 토멸 당하였다" 정도가 된다.

특기(特記)할만한 점은 양산박이 의(義)를 내세우는 집단으로 발전하는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초대 두령 조개(晁蓋)는 포함되어 있지 않고 송강(宋江)의 취임식 행사 때 발견된 비문(碑文)에 의해 서열이 결정되어 이후 주장과 부장을 결정하는 데에도 이 서열(序列)에 따랐다는 점이다.

수호지(水滸志)에는 많은 인물들이 대거(大擧) 등장하기에 인물정리는 필수불가결하다. 먼저 천강성의 인물 20인부터 알아보자. 호보의(呼保義) 송강(宋江)은 양산박의 대두령(大頭領)이고, 옥기린(玉麒麟) 노준의(盧俊義)는 곤봉술(棍棒術)에 뛰어나다. 지다성(智多星) 오용(吳用)은 지략(智略)에 능하고 쇠사슬을 잘 쓰고, 공손승(公孫勝)은 도술에 능하고 계도를 잘 쓴다. 대도(大刀) 관승(關勝)은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잘 쓰고, 표자두(豹子頭) 임충(林冲)은 장팔사모(丈八蛇矛)를 쓰고 수두자국이 있다. 벽력화(霹靂火) 진명(秦明)은 낭아봉(狼牙棒)의 명수이고 가시방망이를 잘 쓴다. 쌍편(雙鞭) 호연작(呼延灼)은 쌍채찍을 잘 쓴다. 소이광(小李廣) 화영(花榮)은 활의 명수다. 소선풍(小旋風) 시진(柴進)은 단서철권(丹書鐵券)을 지닌 시세종(柴世宗)의 자손으로 똑똑하고 부유하다. 박천조(撲天雕) 이응(李應)은 수리검을 잘 던지고 검에 능하다. 미염공(美髥公) 주동(朱仝)은 마병도두(馬兵都頭) 출신으로 관운장(關雲長)을 닮아 수염이 아름답고 대도(大刀)에 능하다. 화화화상(花和尙) 노지심(魯智深)은 힘이 장사에 등에 꽃문신이 있다. 선장(禪杖)과 계도(戒刀)를 잘 쓴다. 행자(行子) 무송(武松)은 수호지의 스타급 인물로 무예가 가장 뛰어나고 힘도 호랑이를 때려잡을 정도로 장사이다. 쌍창장(雙槍將) 동평(董平)은 쌍장창(雙長槍)에 능하다. 몰우전(沒羽箭) 장청(張淸)은 돌팔매질의 명수다. 청면수(靑面獸) 양지(楊志)는 면상에 푸른색 반점을 가지고 있고 무예에 능하다. 금창수(金槍手) 서령(徐寧)은 구겸창술(鉤鎌槍術)에 능하다. 급선봉(急先鋒) 삭초(索超)는 대명부(大名府) 유수사(留守使)의 정패로 별명은 성질이 급하고 용맹하여 별명이 급선봉인데 일찌기 청면수 양지(楊志)와 무예를 겨룬 바 있다. 신행태보(神行太保) 대종(戴宗)은 강주(江州) 뇌옥의 압로절급(押虜節級)으로 도술을 배워 하루에 팔백 리를 걸을 수 있기에 신행태보라 불리는데 갑마(甲馬)라는 부적을 쓴다.

내용 개요(槪要)
북송 말인 선화(宣和) 연간에 송강(宋江) 이하 108명의 호걸들로 회집(會集)된 군도(群盜)가 산둥의 양산박을 근거지로 관(官)과 맞서는 이야기이다. 108명의 전력(前歷)은 하급관리·무관·시골 학자·농어민·상인·도박꾼·도둑 등 복잡하고 다양하며 이들은 각각 정정당당한 또는 불령(不逞)한 여러 가지 혐의 때문에 속속 양산박(梁山泊)에 흘러들어왔다. 수호전(水滸傳)의 후반은 양산박을 진압 못한 조정의 귀순책(歸順策)에 속아서 관군으로 둔갑(遁甲)하고, 북방의 요(遼)를 치고 다시 강남의 방랍(方臘)의 난을 평정(平定)하다가 전사·이산되고 그중 남은 사람들은 탐관오리(貪官汚吏)에게 독살당하거나 체념하고 잠적(潛跡)하는 비극으로 끝난다.

소설 발단 인물인 황제 송휘종(宋徽宗)
송(宋)나라의 휘종(徽宗, 1082년 11월 2일 ~ 1135년 6월 4일)은 사치(奢侈)를 위해 토지를 측량할 때에는 기존보다도 짧은 길이를 이용하고 그것에 의해 발생한 잉여(剩餘) 논밭을 강제적으로 국고(國庫)에 편입하거나, 매매계약서가 애매한 토지를 몰수(沒收)하는 등 무리한 수단도 취했다. 이와 같은 악정에 시달린 백성들의 원한은 높아져 방납(方臘)의 난 등 농민 반란이 연달아 일어났다. 이러한 반란(反亂) 지도자의 중에는 산동에서 활동한 송강(宋江)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를 모델로 하여 탄생한 것이 명대의 소설 수호전(水滸傳)이다. 휘종은 채경(蔡京)과 동관(童貫) 외에도 허위 군공을 세운 왕분(王黺), 향락에 필요한 자금을 모아온 양사성(梁師成)과 이언(李彦), 기화와 괴석을 많이 모아온 주면(朱勔) 등을 총애(寵愛)하였는데 이들은 사람들에게 육적(六敵)으로 불리며 지탄받았다.

송강(宋江)의 난은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며 “송사(宋史)” 등 기타에 약간의 기록이 있으나 전설화(傳說化)되어 남송·원의 2대를 통해서 강담이나 연극의 재료가 되었다. 그 단계를 볼 수 있는 사료나 작품이 얼마간 전해지는데 그중에서 “대송선화유사(大宋宣和遺事)” 전후 2집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 강석(講釋) 대본식의 전기적(前期的) 역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북송(北宋) 멸망 전후의 애사(哀史)를 엮은 '송강 36인'의 모반(謀反)의 전말이 이미 한 편의 결말을 예상할 수 있는 형태로 삽입(揷入)되어 있다. 이와 같은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명나라 초에(1400년 전후), 시내암(施耐庵)의 손으로 독본소설(讀本小說)로 꾸며져서 처음에는 사본으로 유포되었다고 추정되는데 다시 정리되어 가정 연간(1522-1566)에 ‘충의수호전(忠義水滸傳)’ 100회의 간행이 나왔다.

소설의 특성 및 영향
수호전(水滸傳)은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만력에 걸쳐 있는 장편소설(長篇小說)의 황금시대로서 어느 것이나 송(宋)·원(元) 이래의 민중연예의 정화(精華)를 전제로 하는 만큼 풍부한 오락성(娛樂性)과 동시에 정통문학인 시문(詩文)에 담지 못했던 왕성한 상상이나 적나라(赤裸裸)한 인간 관찰이 있다. 작자는 대부분 무명의 하급 문인으로서 전대의 연예장(演藝場) 고용 작가의 의식을 탈피(脫皮)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수호'는 그러하여 어조의 강석(講釋) 기분은 아주 농후하고 쾌조(快調)하다.

수호전(水滸傳)이 후세에 끼친 영향은 무수한 무협소설의 원조(元祖)가 되었을 뿐 아니라 소설 그 자체의 규범이 된 느낌이 있고 나아가서 소설의 울타리를 넘어 “삼국지(三國志)”와 함께 서민의 역사 지식과 인간학의 보고(寶庫)이기도 했다. 역대의 도둑·모반인은 다투어 양산박 건아(建兒)와 같은 별명을 자칭했고 관은 관대로 '도둑을 가르치는' 책이라 하여 연이어 압박(壓迫)을 가했다. 따라서 혁명 후의 성망(聲望)은 반대로 극히 높은데 주제인 반관(反官) 정신은 원래 회도(誨盜)라든지 혁명으로만 부를 수 없는 통쾌한 불령감(不逞感)의 배경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100회본 후에 풍부한 운문(韻文)을 삭제하고 후반의 줄거리를 늘린 120회본이 나왔으나 문체를 더욱 철저히 산문화(散文化)시키고 전반의 양산박 세력이 모이는 데까지에서 끊어 버린 김성탄(金聖歎)의 70회본이 여러 책을 압도(壓倒)했다.

소설 내용 줄거리
도입부는 송인종(宋仁宗) 시대부터 시작되었는바 송인종은 나라에 역병(疫病)이 돌자 태위 홍신(洪信)에게 장천사(張天師)를 찾아가 역병을 물리칠 것을 부탁(付託)하라는 명을 내린다. 그런데 장천사가 없자 기고만장(氣高萬丈)해진 홍신이 장천사의 복마전(伏魔殿)에서 장천사가 봉인(封印)해두었던 36천강 72지살의 108 마성(魔星)을 실수로 봉인에서 풀어버리고 봉인에서 깨어난 108 마성은 세상으로 흩어진다. 인종은 크게 걱정하지만 역병을 해결하고 온 장천사는 인종에게는 문곡성(文曲星)과 무곡성(武曲星)이 있으니 인종 당대에는 108 마성이 발호(跋扈)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킨다. 다만 후세에 나타나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때는 중국 북송 송휘종(宋徽宗) 치세 때에 세상이 혼란(混亂)해지고 황제는 무능하여 간신들과 어울려 충신(忠臣)들을 멀리하고 황제의 측근이었던 고구(高俅)가 모든 실권을 쥐고 폭정(暴政)을 일삼고 있었다. 이에 과거에 풀려났던 108 마왕(魔王)들이 현세에 108 호걸들로 강림(降臨)하여 양산박을 본거지로 삼고 폭정에 대항(對抗)하여 새로운 세상을 열어간다는 즉 ‘하늘을 대신하여 도를 행한다’는 모반 같은 줄거리다.

초반에는 108 마왕 중 주축(主軸)이 되는 무송(武松), 노지심(魯智深), 임충(林冲), 양지(楊志) 등을 중심으로 무협 이야기를 끌어나가고 중반부에는 108인의 우두머리 격이 되는 송강(宋江)이 주인공이 되며 후에는 108 호걸들이 양산박에 결집(結集)하고 조정에 대항하여 일어서는 내용이다. 개성(個性)이 뚜렷한 108명의 호걸들과 거칠지만 풍부한 어휘 등으로 옛 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며 현재도 대중적(大衆的)으로 읽히고 있다. 108인 중 다수가 독립된 야담(野談), 전설의 주인공이며 말하자면 ‘핍박에 의해 양산에 오른’ 완강한 반항 무리거나 조정(朝廷)에 대항해 용감하게 맛서는 반란파(反亂派와)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주요 사상은 '사해(四海)는 모두 형제'라고 할 수 있다. 작중 양산박(梁山泊) 호걸 108명은 모두 의형제(義兄弟)를 맺어 서로를 호형호제한다. 양산박의 주요 이념(理念)은 '체천행도(替天行道)', '충의쌍전(忠義雙全)'이다. 즉, "하늘을 대신하여 도를 행하며", "충과 의가 모두 온전하다"라는 뜻으로 부패한 북송 조정을 개혁(改革)하고 어려운 백성을 구휼(救恤)하고자 한다. 특히 소설의 주인공인 송강(宋江)을 비롯한 조정 관리, 장수 출신 인물들은 황제(徽宗)가 양산박을 인정하여 조정에 귀의(歸意)하고자 한다. 천하가 혼란(混亂)하여 부득이하게 도적이 되어 고구(高俅)를 비롯한 탐관오리를 척결(剔抉)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양산박은 이들의 주장(主張)과는 달리 100% 의적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물론 북송(北宋) 조정은 아예 답이 없는 상태다. 그래서 수호지(水滸志)를 안티히어(antihero)로 작품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동아시아(東亞細亞)의 주된 사상인 유교, 불교, 도교의 요소도 적잖이 반영(反映)되어 있다. 체천행도(儒), 노지심(魯智深)과 무송(武松), 등원각(佛), 공손승(公孫勝)과 그의 스승 나진인(羅眞人) 그리고 108성, 올안광의 태을혼천상진(道)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소설 전개(展開) 동안 거의 죽지 않던 양산박의 호걸들이 마지막 전투인 방납(方臘)의 반란 사건에서 70명 가까이 우수수 죽어버리는 걸 보면 이것도 비극식의 결말(結末)이라 할 수도 있다. 사실 양산박(梁山泊)이 시대와 장소를 달리한 당시 창궐(猖獗)하던 산적과 호걸들의 얘기들을 억지로 끌어 모은 것이라서 행적을 알 수 없거나 가상의 인물(假像人物)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쉽게 죽어나가는 것이다(自殺).

국내에서는 이문열(李文烈)이 편역(編譯)을 해서 출판한 10권짜리 이문열 평역(評譯) 수호지가 가장 많이 읽힌다. 처음 나왔을 때는 70회본이 기준(基準)이어서 6권만 나왔고 뒤에 가서야 120회본에 기초해 4권이 추가(追加)되었다. 그나마 마지막 10권은 상당 부분을 진침(陳沈)의 수호후전 요약과 작가의 양산박 기행으로 때웠다.

이문열 편역판 6권까지 편역(編譯)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김성탄본(金聖歎本)은 70회 완결로 호걸이 모이는 부분까지다. 관군의 수차례의 침입(侵入)을 물리치고 이후 자발적으로 송에 귀순하고 요의 전호(田虎), 왕경(王慶), 방납(方臘) 순으로 정벌을 나서는 부분은 김성탄본이 아닌 다른 판본(100회본, 120회본)을 근간으로 편역 했는데 원래 100회본은 당대 역사에 맞추어 요의 방납(方臘)으로 진행되었고 이것이 인기(人氣)를 끌자 중간에 가상의 역적인 전호(田虎), 왕경(王慶)을 넣었던 120회가 만들어졌다.

호걸이 모이기 전까지의 이야기와 비교했을 때 문장의 정채(精彩)로움이나 사건의 짜임새가 김성탄본(金聖歎本)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는 것을 생각해보면 국내에 번역된 수호지(水滸志)는 어린이용까지도 대체로 뒷부분의 이야기도 수호지 본편(本篇)으로 쳐주어서 같이 묶어내는 듯하다.

현재까지 확인된 범위에서는 1978년에 금성출판사(金星出版社)에서 김하중 역 수호전으로 나온 70회본이 최초의 완역으로 추정된다. 이 판본은 90년대까지도 금성출판사의 여러 세계문학전집에 재수록(再蒐錄)되었다. 전통적인 장회 구성에 충실하고 역자의 문장도 매우 훌륭하다. 다만 90년대 이후로는 세계문학전집의 일부로만 출간(出刊)되어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

1990년 12월에 청년사(靑年社)에서 연변대학의 조선족 역자들이 번역한 120회본 수호전을 신역 수호지라는 제목으로 7권으로 나눠 출판했다. 이 판본은 현재까지 유일하게 확인된 120회본 번역이다. 이후 2014년 7월에 홍정욱 씨가 운영하는 올재재단에서 4권으로 편집하여 수호지(水滸志)라는 이름으로 소량 발매한 후 품절된 상태였다가 많은 독자들의 재발행 요청이 있자 올재 셀렉션즈로 재출간했다. 이 번역은 교수신문에서 나온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에서 다른 번역본들이 너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추천본(推薦本)으로 뽑혔다. 연변대학 판본(延邊大學板本)은 120회본을 유일하게 장회 구성(章回構成)에 따라서 완역(完譯)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그러나 조선족 번역이라 출판사에서 다소 수정(修整)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에게 낯선 문화어가 더러 쓰였다. 그리고 제목도 수호'지'로 해버리는 바람에 모처럼의 완역본(完譯本)이라는 타이틀에 흠이 되었다.

2012년 10월에 글항아리에서 방영학, 송도진이 번역한 김성탄(金聖歎)의 70회 판본을 6권짜리 수호전으로 번역해서 나왔다. 전통적인 장회구성에 따라 완역했다. 연변대학본(延邊大學本)과 같은 문화어 문제도 없다. 김성탄의 발문(跋文)과 수호전 인물평까지 옮겼기 때문에 이를 통해 김성탄의 수호전에 대한 관점(觀點)을 엿볼 수 있다. 71회 이후 부분은 차후 번역할 계획이 있었던 듯 하나 아직도 소식이 없다. 김성탄 70회본을 기준으로 한다면 김하중 역에서도 빠졌던 발문과 인물평(人物評)을 모두 포함했기 때문에 최초의 김성탄 역 완역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어느 정도 근거가 있지만 최초의 수호전 완역이라고 과장해서 광고한다면 분명히 오류(誤謬)다. 오늘날의 수호전은 엄연히 120회본이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 외 팔봉 김기진의 번역(수호후전을 합친 164회본 기준)이 있었으며 기타 번역들은 대부분 원문을 축약해서 번역하였다. 아마도 시내암(施耐庵)의 원형에 가장 가까울 것으로 생각되는 100회본의 한국어 번역은 현재까지 알려져 있지 않다.

고우영 수호지에서는 고렴(高廉)을 때려잡는 것으로 결말(結末)을 맺는다. '여기가 수호지 이야기의 1/3이다' 하는 식으로 뒷부분을 예견하는 대사를 이것저것 집어넣은 걸 볼 때 연중은 역시 의도(意圖)치 않았던 것인 듯하다. 고우영 수호지의 경우 1973년부터 연재를 했지만 노준의(盧俊義) 등장 직전에 정확히는 사진(史進)을 구하러 출발하는 장면까지 그린 직후 군사정권(軍事政權)의 압박에 의해 중단되었다. 2000년부터 리메이크 판으로 수호지 2000을 연재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앞선 판보다도 이른 시점(고당주 공략 직후, 호연작 등장 직전)에서 중단(中斷)되었다. 후에 자음과 모음을 통해 새로 그린 20권짜리 수호지가 나왔으나 결국 고우영의 사망(死亡)으로 미완성이 되어버렸다.

소설 평가
중국사대기서(中國四大奇書)의 하나로 꼽히며 또 다른 사대기서인 금병매(金甁梅)의 모체가 되는 작품이다.

젊어서는 수호전(水滸傳)을 읽지 말고 나이 들어서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읽지 말라고 한다. 원래는 '젊어서는 삼국지연의를 읽고 나이 들어서는 수호전을 읽어라'라는 말이 와전(訛傳)된 것이지만 수호전은 정의감(正義感)을 불러일으키기에 적합(適合)하니 젊음 자체가 발산하는 혈기(血氣)를 주체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삼국지연의에는 경험(經驗)이 부족한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인생의 지혜(知慧)가 담겨 있으니 이미 삶의 연륜(年輪)이 쌓인 노회(老獪)한 사람들에게 불필요하니 결국 업어치나 메치나 똑같다.

고금(古今)을 통틀어 큰 인기(人氣)를 누리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와는 달리 수호전(水滸傳)은 상대적으로 한 단계 낮은 평가(評價)를 받거나 논란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理由)로는 다음과 같다.

도적, 건달, 살인범 등 범죄자를 미화(美化)한다. 양산박 108호걸들은 환생한 마왕이면서도 부패(腐敗)한 전 정권과 맞서 싸운다는 현재 집권한 좌파들과 스토리가 비슷하기 때문에 완전한 악인(惡人)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도덕적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인물이 많다. 식인, 유아 살해, 불륜 등 미풍양속(美風良俗)에 어긋나는 내용이 많다. 특히 호걸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부패한 송나라 조정의 관리들이 하는 짓과 대등(對等)할 지경이다. 그래서 조선 후기에 소설이 유행하는 것을 경계(警戒)하던 문인들이 항상 예시로 들곤 했던 게 수호전(水滸傳)이었다.

특히 108호걸 중 일부가 잡혀갈 경우에는 무고(無辜)한 민간인들조차 대량학살 당하곤 한다. 노준의(盧俊義)가 옥에 갇혔을 때는 구하는 과정에서 그 성에 있던 민간인(民間人)의 1/3이 피해를 입었다. 이 정도면 미풍양속 수준이 아니다. 그리고 수호지에서 인기 많은 캐릭터 이규(李逵)의 행적은 싸이코패스 살인마이나 다름없다. 작품 내내 양산박 호걸들이 "백성들을 추호도 범하지 않았다"라는 구절이 반복(反復)되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요소 때문에 유교적(儒敎的)인 영웅의 전형상(典型像)에 갇혀버리기 쉬운 다른 고전소설(古典小說)보다 훨씬 더 '진솔한 인간상'을 드러낸다.

이러한 점 때문에 수호전(水滸傳)이 일종의 전근대 암흑가(暗黑街)를 소재로 한 '무서운 이야기'에서 파생(派生)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른바 '무서운 수호전' 이론으로 본래는 훨씬 잔인(殘忍)하고 비도덕적(非道德的)인 이야기였지만 출판화(出版化) 되면서 오히려 점차 순화(純化)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부패한 조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범죄자(犯罪者)뿐 아니라 암군(暗君)도 미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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