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사바토 데 사르노가 정해졌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텅 비어 있는 구찌의 인스타그램 피드에 석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전설적인 모델 다리아 워보위를 모델로 한 주얼리 광고 캠페인이었다. 구찌와 함께한 사르노의 첫 작업물이다. 마리나 체인 주얼리와 블랙 비키니 브리프를 입은 다리아 워보위는 맑고 선명한 자태로 사진에 담겼다. 이는 동시에 사르노가 풀어갈 새로운 구찌의 모습을 암시하는 듯하다. 곧바로 사르노의 데뷔 컬렉션이 예고됐다. 구찌오 구찌가 사랑했던 짙은 버건디 컬러의 ‘로소 앙코라(Rosso Ancora)’ 포스터가 전 세계에 걸렸다. 첫 컬렉션은 이름하여 ‘Gucci Ancora’. 이탈리아어로 ‘앙코라(Ancora)’는 우리가 흔히 아는 ‘앙코르’라는 단어와 유사하다. ‘다시’ ‘계속해서’ ‘아직’이라는 뜻.
사르노는 이 단어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그려내고자 했다. “구찌를 통해 다시 한 번 패션과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기회를 전하고 싶다”며 사르노는 컬렉션이 가지는 의미를 설명했다. 지난 9월 22일, 구찌 허브 내의 광활한 공간에서 사바토 데 사르노의 데뷔 무대가 열렸다. 캄캄한 어둠 사이로 한 줄기 빛이 흐르고 그 뒤를 따라 모델이 등장했다. 오프닝 룩은 화이트 슬리브리스 톱과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의 롱 코트, 마이크로쇼츠였다.
여기에 ‘로소 앙코라’ 컬러의 재키 백과 두툼한 플랫폼이 더해진 클래식 조던 로퍼가 등장했고, 목에는 다리아 워보위가 착용한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이번 컬렉션을 함축적으로 담아낸 룩이다. 사르노가 1990년대 톰 포드 시절의 구찌를 보고 자란 세대였기 때문일까? 그가 기억하고 되살려낸 구찌의 새 모습은 미니멀한 동시에 섹슈얼하고 동시대적이었다.
뒤이어 등장한 후디드 집업 재킷, 오버사이즈 데님 진, 화이트 셔츠, 캐미솔 미니드레스 등 레디 투 웨어는 웨어러블한 아이템이 주를 이뤘고, G 로고 주얼리부터 GG 수프림 패턴 쇼츠, 홀스빗 로퍼, 그린-레더 웹 디테일의 코트 등 하우스의 아카이브 요소들을 컬렉션 전반에 활용했다. 클래식한 재키 백 역시 재클린 케네디가 들었던 오리지널 버전인 ‘G1244’ 백의 후크 모양의 클로저를 재해석해 적용했다. 곳곳에 구찌만의 아이덴티티를 더한 게 눈에 띈다.
이번 쇼를 축하하기 위해 수많은 셀러브리티가 참석했다. 사르노의 전 직장 수장이자 오랜 스승인 발렌티노의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는 물론이고, 첫 캠페인의 모델이 돼준 다리아 워보위, 라이언 고슬링을 포함한 하우스 앰배서더들까지 총출동해 구찌의 새로운 비전을 감상했다. 사바토 데 사르노의 첫 쇼는 박수갈채를 받으며 성공적인 막을 내렸다. 결론적으로 그의 데뷔 컬렉션은 그가 사랑했던 옛 구찌에 대한 헌정 같았다. 그 아름다움이 다시 한 번 우리 일상에 깃들기를 바라는 그의 애정 어린 마음이 컬렉션으로 재해석돼 등장한 것이다. 과연 그가 제안하는 새로운 구찌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울림을 줄지 기대가 증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