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전과 동시에 국제유가 폭등할 것, 이란, 사우디가 시위 자극한다 여겨, 러시아 밀착 이란, 핵협상도 소극적, 미-사우디 관계, 원유감산으로 냉랭, 용병 사우디-자국민 이란, 상대안돼
중동에 메가톤급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란이 사우디를 공격한다는 시나리오다. 현실화되면 글로벌경제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보다 더 큰 악재가 될 것이 확실하다. 사우디는 '세계의 주유소'라 할 만큼 세계 석유시장에서 점유율이 높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세계 석유매장량의 17%, 석유시장점유율 2위(12%)를 기록하며 글로벌 에너지 공급을 짊어지고 있다. 이런 국가가 전장터가 되면 그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
특히 이란은 코앞인 호르무즈해협을 십중팔구 봉쇄하려 들 것이다. 이곳은 세계 전체 원유 해상 운송량의 약 30%가 통과한다. 우리나라 수입원유의 약70%도 이곳을 지난다. 이곳이 봉쇄되면 국제 원유공급망은 마비되고 그 피해는 상상하기 힘들다. 물론 사태가 악화될 때까지 미국이 좌시하진 않을 것이라는 기대는 있다.
현재는 개연성만 있을 뿐 실제 전쟁으로 비화할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CNN, 월스트리저널(WSJ) 등 미국 미디어들은 지난 1일(현지시간) 이란이 사우디의 에너지 기반 시설을 공격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정보를 사우디와 미국이 공유했다고 보도했다. 이란의 사우디 공격 가능성은 WSJ가 펜타곤(미 국방부) 관리를 인용해 처음 보도했는데, 이란은 첫 보도가 나간 후 터무니없는 모함이라고 부인하고 있다.
◇이란의 사우디 공격 가능성 배경
이란은 사우디를 공격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것을 부인하지만, 사우디에 대해 경고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잖아도 앙숙인 두 나라가 최근 핏대를 올리는 가장 큰 이유는 반(反)이란정부 활동을 하는 '런던인터내셔널'이라는 방송에 사우디가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이란이 보기 때문이다. 이란은 사우디를 향해 런던인터내셔널을 지원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중이다.
런던인터내셔널은 지난 9월 테헤란에서 히잡을 불량스럽게 썼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된 후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와 관련한 이란 내 대규모 시위를 자극하고 독려하는 방송을 해오고 있다. 런던인터내셔널과 사우디 정부는 이란의 주장은 전혀 근거 없다고 부인한다. 그러나 이란은 그 말을 믿지 않고 기정사실화하며 이를 빌미로 사우디가 대가를 지불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협박하고 있다.
아라비아반도 남단 예멘에서 양국이 실질적으로 대리인을 내세워 벌이고 있는 내전의 휴전 기간이 만료되는 것도 양국간 전쟁 발발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사우디는 예멘 정부를 지원하고 이란은 시아파인 후티 반군을 지원 중인데, 조만간 휴전이 종료되면 격전이 예상된다.
사우디와 이란은 모두 이슬람국가지만 종파가 다른 상극이다. 사우디는 이슬람의 최대파인 수니파의 영도국이고 이란은 소수파인 시아파의 영도국이다. 수니파와 시아파는 이슬람교 성립시기인 7세기 이래 물과 기름일 정도로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적대감을 지니고 있다.
◇미국과 사우디 향해 적대감 높이는 이란
이란은 올 들어 미국과 사우디를 향한 적대감을 높이고 있다. 이란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공격용 자살드론을 제공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최근 CNN방송은 이란이 드론은 물론 지대지 단거리탄도미사일까지 러시아에 보낼 정도로 러시아와 밀착하며 미국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은 미국 및 유럽과 벌이고 있는 이란핵협정인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의 복원 협상에 대해서도 이전과 달리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 독일,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은 협상이 타결되면 이란의 석유수출이 단계별로 해제되면서 석유 및 가스 값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미국보다도 더 이란 핵에 대한 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 적극적이다. 이란도 지금처럼 러시아와 밀월기가 아니었을 때는 협상에 적극성을 보였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지난 달 이란 군 인력이 크림반도에서 러시아를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동시에 미 국무부는 이란 드론 제작과 수송에 관여한 업체 등에 대한 제재에 들어갔다. 이란의 공격 첩보에 대해서도 언론에 적극 확인해주고 있다. 이는 만약의 경우 미국이 이란을 공습할 수 있는 명분을 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최근 언론 브리핑에서 "미국은 위험한 현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며 "군, 정보,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첩보를 확인 중이며 사우디와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우디-이란, 어느 쪽에 승산 있나
미국은 사우디와 동맹관계를 맺고 있고 이란과는 1980년 단교 이래 적성국이다. 최근 미국은 OPEC+에서 사우디가 미국의 감산 유보 요청에도 11월부터 하루 200만 배럴 감산한다는 결정을 내리자 단단히 화가 나 있는 상태다. 미국이 말로는 동맹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지만, 요즘 미국과 사우디간 기류는 예전과는 다르다. 미국이 무조건적으로 사우디를 도울지는 미지수다.
미국이 사우디를 돕지 않는다면 사우디는 이란을 상대하기가 버겁다. 이란은 사우디 내 정유시설 등을 우선 공격 타깃으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2019년 있었던 사우디 석유생산시설에 대한 드론과 미사일 공격도 이란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 이때 사우디의 패트리어트 방어망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방어에 실패한다면 치명적 손실을 입을 것이다.
무엇보다 사우디 군대는 이란 군대에 비해 국가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진다. 사우디 정규군은 24만명 정도로 추정되나 장교와 무기체계를 다루는 인력은 주로 파키스탄과 이집트 등의 용병으로 구성돼 있다. 자국민이 아닌 용병이 실제 전장에서 목숨 걸고 싸울지는 의문이다. 장비는 최고다. 미국에서 최첨단 무기를 들여와 막강하지만, 그것을 운용하는 인력은 주로 외국 용병이고 자국민은 별로 없다. 사우디가 용병을 중심으로 군대를 운영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군대가 왕가를 향한 전복세력으로 변할까 두려워 자국민으로 구성된 통상적인 군대를 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이란은 혁명수비대가 주축이 된 정비된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에 따르면 35만명의 정규군에 15만명의 혁명수비대가 있다. 해군도 2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기 수준도 높은 편이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죽음의 새'로 악명 높은 자살드론은 위력적이다. 게다가 이란의 미사일 수준도 무시할 수 없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중단거리 미사일을 포함한 이란의 미사일 능력은 중동 지역에서 가장 막강하다. 사우디 전역을 커버할 수 있다.
아무튼 사우디와 이란간 전쟁은 양국을 위해서도, 세계 경제를 위해서도 피해야 한다. 만약 양국이 국지전이라도 벌인다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몇 배 되는 핵폭탄급 충격을 줄 것이다. 국제석유시장 관계자들은 사우디와 이란이 전쟁에 휩싸이면 국제유가와 천연가스가격은 천정을 뚫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규화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