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송석주
세상이 팽창할 때가 있다. 특히 여행할 때가 그렇다.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갈 때, “세상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라는 감탄을 연발하면서 공간에 대한 인식이 확장하는 경험을 한다. 공간뿐만이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관심’을 기울일 때, 그 존재는 내가 알기 이전보다 깊고, 넓어진다.
그런 점에서 여행이라는 명사를 동사로 표현한다면, 아마도 ‘관심을 기울이다’가 아닐까. 여행을 가면 사소한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그 관심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경험을 하게 되니까 말이다.
‘관심경제’라는 말이 있다. 소비자의 관심을 파악한 후 그에 맞는 재화와 서비스 등을 시장에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소비자의 관심이 돈이 되는 구조가 바로 관심경제다. 김난도 교수는 책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2022년의 화두 중 하나로 ‘라이크커머스(Like Commerce)’를 꼽았다.
‘필요’가 아닌 ‘관심’이 가거나 좋아하면 구매한다는 태도가 포인트다. 몇 십만의 팔로워를 보유한 유명인이 광고성 게시물 하나를 올려주는데, 기업으로부터 엄청난 금액의 광고료를 받는 것은 ‘관심’과 ‘좋아요’가 돈이 되는 단적인 사례다.
책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의 저자 제니 오델은 이러한 관심경제의 폐단을 지적한다. 그는 관심경제에 사로잡힌 ‘관심의 주권’을 되찾아 다른 방향으로 확장하자고 제안한다. 관심의 대상을 소셜 미디어나 스마트폰이 아닌 자신으로 돌리자는 것이다.
오델은 “우리는 관심을 기울이는 행위를 통해 누군가의 소리를 듣고, 누군가를 보고, 우리의 세상에서 누가 행위 주체성을 가질지 결정한다”고 말한다. 내가 나에게 관심을 기울일 때, 내가 나를 여행할 때, 우리는 ‘진짜’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내가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방법으로 오델은 ‘아무 것도 하지 않기’를 추천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실제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을 뜻하는 게 아니다. 내가 평소에 관심을 갖지 않는 존재와 눈을 마주치는 행위가 바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에게 틈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해야만 불안에서 벗어나는 사람이라면, 카페에 가만히 앉아서 ‘멍’을 때려보자. 창밖으로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 브이 자를 그리며 나는 새들, 불현듯 떨어지는 낙엽을 통해 내가 알고 있는 시공간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눈, 당신의 손, 당신의 숨결, 지금 이 시간, 당신이 이 책을 읽고 있는 장소. 이것들은 진짜다. 나도 진짜다. 나는 아바타가 아니고, 취향의 조합도 아니고, 매끈한 인지적 작용도 아니다.
나는 울퉁불퉁하고 구멍이 많다. 나는 동물이다. 다른 생명체가 나를 보고 듣고 냄새 맡는 세계에서 나 역시 보고 듣고 냄새 맡는다. 이 사실을 기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 그저 귀 기울일 시간, 가장 깊은 감각으로 현재 우리의 모습을 기억할 시간 말이다. - 제니 오델,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中
영화감독 김보라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진짜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법’에 관한 책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밀려드는 휴대폰 알람을 덮어두는, 의례적인 제안을 거절하는, 어떤 시기에는 아무것도 말하거나 쓰지 않는 자제력이 필요하다”며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쓸모 있는 공백과 여백, 틈과 간격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러한 ‘비어있음’이 진짜 인간이 되는 데 필요한 공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체감할 수 있다. 진짜가 되고 싶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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