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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 천리(김일용 원장님 연주-제67호)

경개여구 2024. 5. 2.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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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 천리(김일용 원장님 연주-제67호)

 

"일전에 업로드한 새로운 김일용원장님 아코디언연주 동영상입니다.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노래소개

유정천리 -  작사 반야월. 작곡 김부해, 노래 박재홍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감~자~심고 수수심~는
두메~산골 내 고향에
못살아도 나는 좋~아
외로워도 나는 좋~아
눈물어~린~ 보따리~에
황혼빛이 젖어드네

세~~상을 원망하~랴
내 아내를 원망하랴
누이~동생 혜숙이~야
행복~하게 살아다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인생길은 몇 구비~냐
유정천~리~ 꽃이 피~네
무정천리 비가 오네

자유당에 꽃이 피네 민주당에 비가 온다
‘4·19와 대중문화’ 학술대회

 

“‘유정천리’란 유행가의 곡조에 맞추어 부르고 있었는데 이 가사가 바로 대구시내 모 고등학교 재학생이 지은 것이라고. … 학교 당국에서는 혹시 자기 학교 학생이 지은 것이나 아닌가 하고 벌벌 떨면서 그 작자(作者)를 색출하느라고 학생들의 신체 수색까지 한 일이 있다고도 한다.”

1960년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앞둔 2월 15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 박사가 미국에서 급서하자 조 박사를 애도하는 노래가 퍼지고 있다며 동아일보가 1960년 3월 9일자에 보도한 내용이다.

 

19일 56주년을 맞는 4·19혁명과 대중가요, 영화 등의 관계를 다룬 학술대회가 최근 열렸다. 고려대 박물관 등의 주관으로 개최된 ‘4월 혁명과 문화의 새로운 모색’에서 이준희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발표문 ‘혁명의 노래, 미완의 노래’를 통해 “4·19혁명 전 ‘유정천리’를 개사한 노래가 전국으로 구전되며 끓어오르는 대중의 심리를 절실하게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1959년 10월 개봉된 영화 ‘유정천리’의 동명 주제가가 호응을 받았는데, 이 노래는 조 박사의 서거와 자유당의 3·15 부정선거 등을 거치며 새로 탄생했다. “경북대사대부고 학생 3명이 개사한 이 노래가 2·28민주운동(1960년 대구 고교생들이 이끈 민주화 시위)의 서막을 장식했다”는 증언(본보 2010년 4월 19일 보도)도 있다.

대중가요의 히트가 유력 야당 대통령 후보의 죽음과 관계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다시 못 올 그 날짜를 믿어야 옳으냐/속는 줄을 알면서도 속아야 옳으냐/죄도 많은 청춘이냐 비 내리는 호남선에/떠나가는 열차마다 원수와 같더란다.” 1956년 발표된 ‘비 내리는 호남선’(손로원 작사, 박춘석 작곡, 손인호 노래)이다. 그해 5월 신익희 민주당 후보는 대통령 선거 투표 열흘을 앞두고 호남 지역 유세를 위해 이동하던 중 열차에서 쓰러져 급서했다. 이 노래는 신 후보의 죽음을 모티브로 했다는 풍문이 돌면서 널리 사랑받았다.

하지만 이 교수는 4·19혁명 뒤 대중음악계의 대응이 미진했다고 봤다. ‘4·19와 유정천리’ ‘사월의 깃발’을 비롯해 10여 곡이 발표됐지만 상투적 표현에 그쳤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 노래들은 혁명의 의미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고, 이후 혁명 자체가 미완으로 남으면서 노래 또한 안착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함충범 일본 나고야대 객원연구원도 ‘4·19혁명이 영화계에 미친 영향 고찰’을 냈다. 그에 따르면 4·19혁명 뒤 민간 심의기구가 관청의 영화 검열을 대체했고, 당대의 현실을 진지하게 묘사한 수작 ‘오발탄’도 1961년 4월 개봉됐다. 함 연구원은 “영화법 도입, 국립영화제작소 설치, 비정부 기관의 영화 심의,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운동 등 한국 영화계의 굵직한 이슈들은 모두 4·19혁명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유차영의 대중가요로 보는 근현대사] 유정천리

감자 심고 수수 심는 두메산골

반야월·김부해·박재홍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로 이어지면서 우리나라 대중가요계는 영화 주제곡을 부르는 가수들이 인기 대세(大勢)를 이끌었다. 해방광복이후 미군정과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밀려온 서구 대중문화예술 중, 영화의 영향이 컸다. 이러한 시류(時流)가 전쟁의 상처(실향민, 미망인, 전사·실종, 전장, 이산가족, 고아 등)를 품고 살아가는 사회상과 맞물린 것도 영향이다. 이 노래는 1959년 남홍일 감독 영화 <유정천리> 주제곡이다. 영화 줄거리는, 가난한 아버지가 본의 아니게 죄를 짓고 형무소에 가자, 어머니는 정부(情夫)를 따라 자취를 감춘다. 어린 아들은 엄마·아빠를 찾아 눈물로 나날을 보내는데, 아버지는 형기(刑期)를 마치고 감옥에서 나와 거리를 거닐던 중 우연히 아들과 상봉(相逢)한다. 아이는 아버지를 만나서 손을 잡고 노래 가사처럼 석양 무렵에 고향으로 돌아간다.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감자 심고 수수 심는 두메산골 내 고향에/ 못 살아도 나는 좋아 외로워도 나는 좋아/ 눈물어린 보따리에 황혼 빛이 젖어드네// 세상을 원망하랴 내 아내를 원망하랴/ 누이동생 혜숙이야 행복하게 살아다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인생길은 몇 구비냐/ 유정천리 꽃이 피네 무정천리 눈이오네.(가사 전문)

 

그 당시 시대상황은, 1960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조병옥 박사가 미국에서 수술 중 갑자기 사망한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슬픔에 빠진 그를 지지하던 민중들이 이 노래를 정치현실을 비꼬는 가사로 바꿔서 부른다. 국민들은 1956년 제3대 대통령선거에서 해공 신익희가 선거유세 기간 중 호남선 열차 안에서 사망(1956.5.5 새벽, 이리역 근처)한 사건과 연계하여 더욱 비통해 한다. 결국 이 노래는 조병옥 박사 장례식의 추모곡이 되었으며, 후에 남백송·문주란 등이 리메이크로 불렀다.

 

<유정천리>가 처음 발표될 당시 박재홍은 32세 김부해는 41세였다. 박재홍은 1927년 시흥에서 출생하여 은행원으로 근무하다가 20세이던 1947년에 오케레코드 주최 콩쿠르에 입상하여 이듬해 <눈물의 오리정>으로 데뷔를 했다. 그의 인기곡은 <울고 넘는 박달재>, <물방아 도는 내력>이고 1989 3월 향년 63세로 작고했다.

 

김부해는, 1918년 양주에서 출생하여 서울 전매청 취주악단에서 활동하였으며, 이후 악단장을 하다가 가극단 꽃에서 색소폰도 연주한다. 그가 작곡을 시작한 것은 반야월의 남대문악극단 주제가를 작곡하면서부터, 1953년 신세계레코드와 전속계약을 맺고서 본격 작곡을 한다. 그는 1956 <밤비의 블루스>, <심야의 탱고>, 1957년 안정애의 <대전 블루스>를 작곡하고, 1965년에는 김세레나를 <새타령> <갑돌이와 갑순이>로 데뷔를 시켰다.

 

또한 1958년에는 김부해가요학원을 운영하였으며, 1961년에는 연예인협회이사, 1962년에는 음악저작권협회 감사를 지냈다. 그의 대표곡은 <대전 부르스>, <유정천리>, <남원의 애수>, <눈물의 연평도>, <사랑에 우는 밤>, <항구의 사랑>, <아리조나 카우보이>, <잊지 못할 영등포의 밤> 등이 있으며, 그는 1988 7 15일 한양대병원에서 향년 70세로 작고하였고, 묘지는 양주시 마전동 주내 파출소 뒷산에 무연고 묘지처럼 허물진 봉분아래 쓸쓸히 잠들어있다.

 

자유당 정권 말기 정치상황을 비아냥한 풍자가사는 당시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대중가요의 묘미가 바로 이런 면이다. ‘가련다 떠나련다 해공선생 뒤를 따라/ 장면 박사 혼자 두고 조박사도 떠나갔네/ 가도가도 끝이 없는 당선 길을 몇 구비냐/ 자유당에 꽃이 피고 민주당에 비가오네// 세상을 원망하랴 자유당을 원망하랴/ 춘삼월 십오일 조기 선거 웬말이냐/ 천리만리 타국 땅에 박사죽음 웬말이냐/ 눈물어린 신문 들고 백성들이 울고있네

 

조병옥 박사는, 1960년 대통령 선거일을 한 달 가량 남겨두고 미국 육군병원에서 수술 도중, 민주주의의 열망을 가슴에 안은 채 영면했다. 당시 국민들은 1956년 해공 신익희의 서거 기억을 떨치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1960 3.15부정선거는 자유당정권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공무원들이 사표를 내고 낙향했다. 경찰은 양심선언을 연이어 했다. 교사들을 교단에서 학생을 마주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노래 <유정천리>는 대중적 공감대를 사기에 충분했다. 작가와 가수는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수난을 겪었다. 이 노래는 후에 윤보선 대통령이 애창했다. 이때 박재홍은 반골가수라는 정치적인 미운털이 박힌다. 정치판 선거와 대중가요는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선거 때가 되면 온 나라가 선거열풍으로 휩싸인다. 요즘은 정치인이나 유명인들이 자신의 애창곡을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시대다. 대중가요를 통해 자신의 상징적인 이미지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역대 대통령들이나 유명 정치인들이 어떤 가수의 노래를 좋아하고 즐겨 부르는지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노래에 관한 에피소드는 공적 공간이 아닌 사적인 공간에서 대부분 이뤄진 탓도 크지만 대중가요를 천박하게 인식했던 대중적 시각도 한 몫 했다. 즉 과거에는 애창곡 공개 여부가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지금은 대중적 파급력이 막강해진 대중음악을 소홀하게 대할 대통령후보는 없다.

 

구수한 음색이 매력적이었던 박재홍의 노래는 비릿한 시대상을 비웃는 듯 했고, 상처받은 서민의 마음을 어루만진 가락이었다. 특히 한국전쟁 시기에 발표된 히트곡 <물방아 도는 내력>은 전쟁 속에서도 추잡한 모습을 보였던, 1952년 부산정치파동에 실망한 국민들에게 귀거래사로 여겨진 의식 있는 노래였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1960 <유정천리>는 자유당을 비판하는 가사로 둔갑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었다.

[유차영의 대중가요로 보는 근현대사] 유정천리

 

[유차영의 대중가요로 보는 근현대사] 유정천리 - 코스미안뉴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로 이어지면서 우리나라 대중가요계는 영화 주제곡을 부르는 가수들이 인기 대세(大勢)를 이끌었다. 해방광복이후 미군정과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밀려온 서구 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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